평론
멀홀랜드 드라이브 (2001) - 데이비드 린치
멋있는막국수
2026-03-21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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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컬트 영화의 거장, 데이비드 린치의 대표작 중 하나이며, 21세기 최고의 영화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걸작이다. 정성일 평론가는 2001년에 개봉한 이 영화를 보고 21세기 영화가 시작됐다고 느꼈다고 평했다. 그런 만큼, 작년 데이비드 린치의 부고 소식은 전 세계의 수많은 시네필들에게 아주 큰 충격과 슬픔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당시에는 그의 작품을 하나도 관람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의 부고 소식이 다른 팬들만큼의 상실감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이제야 그의 작품을 관람하고 영화계가 얼마나 큰 별을 잃었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 린치를 향한 추모와 감사의 의미를 담아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리뷰해보고자 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난해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나도 이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관에 들어갈 때 다소 긴장한 채로 들어갔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후, 생각보다 그렇게 난해한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의 해석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괜찮다. 영화라는 예술은 원래 내 안에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영화는 크게 2부로 나눌 수 있다. 그 기점은 당연하게도 푸른 상자를 연 시점이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나뉜 두 부분은 완전히 정반대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게 바로 이 영화의 매력이다. 1부, 즉 푸른 상자가 열리기 전까진 이야기가 순조롭게 진행된다. 물론 중간중간 뜬금없다고 생각되는 장면들도 있고 무슨 의미인지 아리송한 연출들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진행 방향만큼은 뚜렷하다. 자동차 사고를 당한 리타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여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 굵은 줄기 주변으로 뻗어있는 아리송한 장면들은 2부에서 반전된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생기를 얻고 의미를 찾는다. 기이한 꿈같던 장면들로 관객들이 영화에 흥미를 갖게 하면서 그 해답을 정반대의 세계에서 찾게 만드는 영화 구성은 그야말로 감탄이 나온다.

1부를 보다 보면 여러 의문들이 생긴다. 아담의 이야기는 왜 나오는 거지? 가게 뒤편에서 갑자기 등장해 우리를 놀라게 하는 기괴한 남자는 정체가 뭐지? 다이앤은 누구고 그녀는 왜 죽어 있는 거지? 1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부를 봐야 한다. 2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이앤(1부에서의 베티)은 카밀라(1부에서의 리타)와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카밀라는 이런 관계를 끝내야 한다며 다이앤을 밀어낸다. 카밀라는 영화감독인 아담의 영화에 출연하며 그와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그녀는 일부러 다이앤 앞에서 아담과 애정행각을 하고, 그런 모습을 본 다이앤은 분노에 차게 된다. 다이앤은 한 남자(1부에서 자동차 사고를 낸 젊은이)에게 카밀라의 사진을 보여주며 모종의 의뢰를 한다. 1부에서 우리를 놀라게 한 기괴한 남자는 푸른 상자를 들고 있다. 집으로 돌아온 다이앤은 한 노부부(1부에서 베티가 공항에서 만난 노부부)의 환영을 보고 총으로 자살한다.

자, 이제 1부에서 엉켰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한다. 1부는 일종의 “꿈"이다. 다이앤의 꿈. 다이앤의 꿈에서는 절망적인 현실과는 정반대로 반전된 세계가 드러난다. 다이앤은 비록 배우 지망생이지만 오디션에서 모두의 극찬을 받는다. 자신을 배신했던 카밀라는 사고를 당하고 기억을 잃은, 즉 ‘다이앤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등장하며 현실에서는 실패한 사랑마저 성공하게 된다. 카밀라를 ‘뺏어간’ 아담은 외압으로 인해 여주인공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캐스팅하지도 못하고, 애인의 바람을 목격하며, 처참한 몰골로 자신의 집에서 쫓겨나 파산했다는 소식마저 듣는 비참한 인물로 묘사된다. 당연히 꿈이기에 1부의 등장인물들은 2부에서, 즉 현실에서 등장한 인물들의 재구성이다. 집주인 코코는 아담의 어머니이고, 카우보이는 파티에서 목격한 인물인 것처럼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름 또한 뒤죽박죽이다. 다이앤은 현실에서의 가게 종업원의 이름인 베티가 되고, 카밀라라는 이름은 아담이 억지로 캐스팅해야 하는 여배우의 이름이 된다.

그렇게 꿈을 살아가던 베티와 리타에게 현실이 점점 다가온다. 분명 현실에서 죽은 다이앤의 시체를 꿈에서 목격하며, 함께 간 공연장에서는 모든 소리가 허구인 공연을 보게 된다. “Silencio! No hay banda!” 분명 밴드와 악기가 없는데 음악이 나오고, 가수는 쓰러졌는데 노래가 나온다. 리타는 베티와 함께 공연장에서 극적인 경험을 하며 모든 것이 허구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 집으로 돌아온다. 어느새 베티는 사라져 있고, 리타가 푸른 열쇠로 푸른 상자를 열며 1부가 끝난다. 1부의 주인공은 리타다. 물론 베티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1부는 분명 리타가 사고를 당하며 시작하고 리타가 상자를 열며 끝난다. 1부, 즉 꿈의 주체는 리타인 것이다. 다이앤의 꿈에서 그녀는 리타, 즉 카밀라가 된다. 다이앤은 꿈에서 카밀라가 되어 그녀와의 사랑, 배우로서의 다이앤의 정체성, 아담을 향한 소소한 복수 등 모든 욕망을 이룬 것이다.

이 영화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 어떤 이는 1부가 현실이고 2부가 꿈이다, 또 어떤 이는 1부와 2부 모두 꿈이다, 등등 서로 아예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1부가 꿈이고 2부가 현실이라는 구조가 가장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1부에서는 환상적이고, 개연성이 무너져 있으며, 도무지 현실이라고 느껴지지 않거나 해석이 어려운 장면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그에 반해 2부에서는 비교적 그런 연출이 적거나 혹은 아예 없다고까지 바라볼 수 있다.

또한 1부에서 감독이 이미 “이것은 꿈입니다" 하고 힌트를 줬다고 생각한다. 가게 시퀀스가 바로 그것이다. 한 남자는 자신이 악몽을 꾸었고, 그 꿈속의 정체불명의 남자가 현실에선 없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가게에 왔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국 정체불명의 남자는 등장하고 악몽을 꾼 남자는 쓰러진다. 마치 감독이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고 힌트를 주는 듯 보인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구조 또한 나의 생각에 힘을 실어준다. 영화의 내용과 구성 상, 이 영화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현실이 꿈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영화다. 그런 와중에 영화는 1부와 2부의 길이를 정직하게 1:1로 나누지 않았다. 2시간 30분가량의 영화에서 1부가 무려 2시간, 2부가 나머지 30분 정도에 불과한 독특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만약 2시간 동안의 현실을 먼저 보여주고 고작 30분 동안 꿈을 보여줬다고 해보자. 이런 형식이라면 영화에서 30분가량의 “꿈"은 그 힘을 잃고 의미가 없어져버린다. 사실상 없어도 되는 부분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혹은 둘 다 꿈이라면 영화 전체 러닝타임에서 1부와 2부의 비중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설정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2시간 동안, 즉 ‘다른 영화의 평균적인 러닝타임’만큼 보여주다가, 추가 30분을 통해 사실 앞의 내용은 2부의 반전 세계이자 꿈이었다는 것을 드러낼 때 이 영화가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나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며 이는 ‘내가 받아들인 <멀홀랜드 드라이브>’이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100만 명이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봤다면, 세상에는 100만 개의 서로 다른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존재할 것이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할리우드다. 물론 이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배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LA에 온 여자, 사랑과 고통이 만든 욕망, 욕망의 비극적 실현, 영화계의 이면 등 영화는 ‘할리우드’ 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정말 훌륭하고도 아름답게 보여준다.

그렇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정말로 아름답다. 가끔 그런 영화들이 있다. 재관람한 것이 아님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에서 영화가 점점 커져 걷잡을 수 없이 좋아지는 영화들. 내겐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그런 영화였다. 본 직후에는 ‘물론 훌륭한 영화긴 하지만 21세기 최고의 영화라고 할 정도인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며칠 후엔, 영화의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장면들과 이미지들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맴돌다가 결국에는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는 내게 영화라는 매체의 매력을 일깨워주는 이상한 힘이 있다. 영화계의 거대한 별을 기리며 이만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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